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제임스 조지프 드레스녹 (문단 편집) === 영화 출연 === [[파일:121849_59011_5320.jpg]] [[1972년]] 북한 당국은 이들에 대한 사상 교육이 충분히 됐다고 판단하여 그들에게 [[북한 공민증|공민증]]을 주고 북한 공민으로 인정했다. 그리고 집, [[배급]]권, 승용차를 지급했다. 이후 북한 당국은 선전에 활용하기 위해 1978년부터 그들을 영화에 등장시키기 시작했다. 이는 영화 애호가이자 선전 수단으로서의 영화의 가치를 중시하던 [[김정일]]의 사고에 의한 것이었다.[* 영화광이었던 김정일은 한국 영화계 최고의 스타들이었던 [[최은희 신상옥 납치사건|최은희와 신상옥을 납치]]해올 정도로 영화에 환장해 있었다.] 덕분에 드레스녹을 비롯한 이들 미국인 월북자들은 전국적인 대스타가 되었다. 드레스녹은 자신이 연기에 재능이 있으리라 생각치 않았지만 선전영화에 등장시킬 서양 배우가 북한에 없었으므로 그들이 동원[* 웬만한 북한 영화에서 미국인 역할로 [[흑인]]도 아니고 [[히스패닉]]도 아닌 해괴한 분장을 한 북한 배우들이 즐비한 모습을 자주 찾아볼 수 있다. 고립된 북한이 서양인 배우를 섭외할 수 있을리 도 만무한데 북한 체제에 순응하는 미국인들의 존재란 이런 면에서 [[단비]]라고 할 수 있었다.]되었고 촬영장에 나가 보니 드레스녹은 자신이 의외로 연기에 소질이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고 한다. 본인뿐 아니라 현장의 북한 감독과 스태프들도 별 기대를 안 했는데 드레스녹이 예상보다 연기를 잘해서 놀랐다고 한다. 당시 드레스녹은 1979년부터 1981년까지 총 20부작으로 제작된 영화 《이름 없는 영웅들》에서 인민군 포로들을 심문하고 괴롭히며 처형하는 포로 수용소 소장인 ‘아서 콕스터드 중령’을 연기했고 드레스녹의 호연에 북한 당국은 그들이 진정으로 인민을 사랑하고 국가에 충성하는 것이 틀림없다고 판단하게 됐으며 적잖은 북한 사람들이 그를 아서 선생으로 기억하게 됐다.[* 본인의 증언에 따르면 [[미군 월북|월북 미군]] 4명 중에서 본인이 가장 연기를 잘 했다고 한다.][* 드레스녹의 연기력도 준수했지만 당시 미국인을 볼 기회가 거의 없던 북한 주민들이 보기에 드레스녹이 '''[[미남]]'''이었기 때문에 특히 인기가 있었다고 한다. 탈북자들의 [[https://youtu.be/nc85keiDGz8|증언에 따르면]] 농담 좀 보태서 드레스녹이 선전영화에 출연하는 날이면 아내들이 남편한테 밥도 안 해 줄 정도였다고 한다.] 이 밖에도 1982년에 [[푸에블로호 피랍사건]]을 다룬 영화 《대결》에도 음모와 흉계를 꾸미는 [[미합중국 해군]] 장교로 출연하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